N-01Field Notes·매일의 현장 노트

AI 역산, 기록을 안 남겼는데 뭘 했는지 알아냈습니다

✓ FIELD-TESTED
타이틀카드 — "AI 역산 / 기록은 없고, 지금 값만 남았을 때"

기록을 안 남긴 과거를 알아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화면에 남은 건 지금 값 하나뿐이었고, 거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는 아무 데도 안 적혀 있었어요.

먼저 답부터 적을게요.
AI 역산이면 됩니다. 기록이 없어도 지금 값과 그 값이 만들어지는 계산 규칙만 있으면, 과거의 선택을 거꾸로 구할 수 있어요.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값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되고, 서로 다른 값 두세 개가 같은 답을 가리켜야 그때 확정이에요.

저는 만든 지 오래된 기계를 넘겨받는 일을 십오 년쯤 해왔어요.
인수인계 서류가 멀쩡한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돌아가는 상태를 보고 "이 사람이 그때 뭘 만졌겠구나"를 되짚는 게 반쯤 습관이 됐어요. 이번에 그 습관을 주말 취미에다 써봤습니다.

1. 공략은 만들어놨는데, 제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몰랐어요

지난주에 AI랑 게임 공략 문서를 하나 만들었어요. 레벨 8 시점 기준으로 만렙까지 어디에 몇 점을 넣을지 확정해둔 문서였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레벨 9가 됐어요.

여기서 막혔습니다.
문서는 "앞으로 이렇게 찍어라"인데, 저는 지금까지 뭘 찍었는지를 몰랐거든요.
화면에는 힘·민첩·체력의 최종 합계만 뜹니다. 어느 레벨에 어디로 몇 점이 갔는지는 어디에도 안 남아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이 게임에는 겁나는 조항이 하나 있어요. 공략 문서에 제가 이렇게 적어뒀더라고요.

| 이미 바에 목표보다 많이 넣음 | 회수 불가. 그대로 두고 다음 관문으로 점프 |

스킬은 골드를 내면 환급이 되는데, 마스터리 바하고 스탯 포인트는 한 번 들어가면 못 뺍니다.
그러니까 잘못 가고 있으면 지금 알아야지, 스무 레벨 더 가서 알면 캐릭터를 버리는 거예요.

처음엔 기억으로 세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에 걸쳐 올린 레벨을 한 점씩 기억할 리가 없죠.. 세볼수록 답이 달라져서 그냥 접었어요.

왼쪽 순방향 — '레벨 1 → 2 → 3 … → 9' 화살표가 오른쪽 끝 '합계 하나'로 모임. 오른쪽 역방향 — '합계 하나'에서 왼쪽으로 뻗는 점선 화살표 세 개에 '전쟁 바 ?', '방어 바 ?', '체력 투자 ?' 물음표 라벨. 하단 캡션 '기록이 없으면 왼쪽은 못 본다. 볼 수 있는 건 오른쪽뿐'

2. 그래서 방향을 뒤집었습니다

기억을 되짚는 걸 포기하고, 화면 숫자에서 거꾸로 올라가 보기로 했어요.

역산이란 결과 값과 변환 규칙을 알고 있을 때 입력 값을 거꾸로 구하는 걸 말합니다. AI 역산은 그 풀이를 AI한테 시키는 것뿐이고요.
재료는 두 개면 됩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값, 그리고 그 값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규칙.

다행히 규칙은 지난주에 이미 문서로 적어뒀어요. 웹에서 열두 번 교차검증해서 확정한 계산식이었습니다.

힘   = 50  + 4×(힘 투자점)  + 2×(전쟁 바) + 1×(방어 바)
민첩 = 50  +                 2×(전쟁 바) + 2×(방어 바)
체력 = 300 + 40×(체력 투자점) + 28×(전쟁 바) + 35×(방어 바)

여기서 제가 모르는 건 네 개예요. 전쟁 바, 방어 바, 힘 투자점, 체력 투자점.
그런데 화면에서 읽을 수 있는 값은 세 개(힘·민첩·체력)뿐입니다.

이게 핵심이었어요. 모르는 값이 아는 값보다 많으면 답이 하나로 안 좁혀집니다.
체력 790만 놓고 보면 이걸 만드는 조합은 수십 가지예요. 방어 바를 많이 올렸을 수도 있고, 체력에 직접 투자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조건을 하나 더 넣었습니다. 게임 안에서 마스터리 바 숫자는 직접 눈으로 셀 수 있거든요. 그 값을 먼저 확정해놓고 나머지를 풀게 했어요.
AI한테 준 지시는 이 순서였습니다. 눈으로 확인 가능한 값부터 고정하고, 남은 미지수를 세 식에 동시에 걸어라.

나온 답이 이랬어요.
전쟁 바 10, 방어 바 6, 힘에 13점, 체력에 0점.

3. 검산이 되니까 그제야 믿었습니다

답이 나왔다고 바로 쓰면 안 되죠. 숫자가 나왔다는 것과 그 숫자가 맞다는 건 다른 얘기니까요.
그래서 나온 답을 다시 식에 넣어봤습니다.

체력 = 300 + 40×0 + 28×10 + 35×6
     = 300 +    0 +    280 +   210
     = 790          ← 화면 값과 일치

여기가 이 방법의 전부입니다.
역산 결과는 딱 떨어지는지로 판정해요. 788이나 793처럼 어중간하게 나왔으면 그건 답이 아니라 근사값이고, 근사값은 버려야 합니다.

그다음에 공략 문서의 목표치 표와 대조했어요.

레벨목표 힘목표 민첩목표 체력현재
811972695통과 (체력 790)
1013078880이대로면 90 부족
15168901,170—

레벨 8 목표선은 넘겼습니다. 여기까지는 잘 온 거예요.
문제는 레벨 10이었어요. 목표 체력이 880인데 지금 790이라 90이 모자랍니다. 체력 투자 1점이 40을 주니까 다음 레벨에서 체력에 2점을 넣으면 870이 되고, 마스터리 바가 주는 몫까지 더하면 선에 닿아요.
결론은 한 줄이었습니다. 레벨 10에서 체력 2점. 이 한 줄을 얻자고 계산식을 다시 꺼내 붙든 거예요.

여기서 솔직하게 하나 밝혀야 할 게 있어요.
이 역산은 가정 하나에 통째로 얹혀 있습니다. 저 식의 맨 앞 숫자 300, 그러니까 레벨 1의 기본 체력이요. 그건 커뮤니티에서 다들 그렇게 말하는 값이지 제가 원문으로 확인한 값이 아니에요. 그래서 문서에 미검증이라고 적어두고 이런 주석을 달아뒀습니다.

게임 화면과 300 내외 차이가 나면 그 차이만큼 평행이동해서 보면 된다

만약 지난주에 이걸 "확정"으로 적어놨다면, 이번 주의 저는 틀린 전제 위에서 계산하고도 답이 딱 떨어졌다고 좋아했을 겁니다.
여러분도 AI가 준 계산식을 그대로 문서에 옮겨 적은 적 있으실 텐데요. 그중에 확인한 값과 통설이 섞여 있진 않을까요?

체력 790을 만드는 분해 막대 그래프 — 왼쪽부터 '기본 300' 회색, '전쟁 바 10 × 28 = 280' 파랑, '방어 바 6 × 35 = 210' 초록, '체력 투자 0점 × 40 = 0' 빈칸. 막대 오른쪽 끝에 '= 790 화면 값과 일치' 초록 라벨. 기본 300 블록에만 '미검증(통설)' 노란 점선 테두리

4. 이 방법이 통하는 조건은 세 개였어요

이번에 해보고 정리한 건 이겁니다. 셋 중 하나라도 없으면 역산은 추측이 됩니다.

조건없으면 생기는 일
규칙이 확정돼 있을 것계산식이 추정이면 답도 추정. 검산이 통과해도 의미 없음
아는 값이 모르는 값보다 많거나 같을 것답이 하나로 안 좁혀짐. 그럴듯한 조합 중 하나를 고르게 됨
합계가 딱 떨어질 것어긋나면 규칙이나 가정이 틀린 것. 반올림으로 넘기면 안 됨

세 번째가 제일 중요합니다.
검산이 안 맞을 때 "거의 맞으니까 됐다"로 넘어가는 순간, 역산은 계산이 아니라 그냥 소망이 돼요.

세 조건을 세로 게이트 세 칸으로 그린 흐름도 — '현재 값 + 규칙' 입력 박스에서 ①규칙 확정 ②아는 값 ≥ 모르는 값 ③검산 일치 순서로 통과. 각 칸에서 옆으로 빠지는 빨간 화살표 라벨 '추정', '조합 중 하나를 찍음', '근사값'. 세 칸을 다 통과한 출구에만 초록 '확정' 박스

이런 게 궁금하실 것 같아서

Q. 그냥 AI한테 "내가 뭘 찍었는지 맞춰봐" 하면 안 되나요?
해봤는데 그럴듯한 숫자가 나옵니다.. 규칙을 같이 주지 않으면 AI는 비슷한 사례를 기억해서 답을 짓거든요. 그럼 검산할 방법이 없어요. AI 역산의 정확도는 AI가 아니라 제가 준 계산식에서 나옵니다. 규칙 없이 물어보면 그건 역산이 아니라 점을 보는 겁니다.

Q. 화면 숫자를 잘못 읽었으면요?
그래서 값을 한 종류만 쓰면 위험합니다. 저는 체력으로 풀고 힘·민첩으로 다시 확인했어요. 하나를 잘못 읽었으면 나머지 두 개가 안 맞아떨어져서 티가 납니다. 값 세 개가 동시에 맞는 우연은 잘 안 생기거든요.

정리하면요

기록이 없다고 포기할 일이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남아 있는 지금 값과 그 값을 만든 규칙만 있으면, 그 사이는 계산으로 메울 수 있어요. 대신 답이 나왔다고 믿지 말고 다시 넣어서 딱 떨어지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규칙 안에 미검증 가정이 몇 개 섞여 있는지도 같이 적어두고요.

이번에 나온 결론은 "다음 레벨에서 체력 2점"이라는 한 줄이 전부였습니다.
그 한 줄 얻자고 이 짓을 했나 싶다가도, 되돌릴 수 없는 걸 만지기 전에 확인하는 값은 원래 이 정도는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되짚은 값을 문서에 다시 써넣을 때, 원래 계획과 실제 상태 중 어느 쪽을 남겨야 하는지를 다뤄보겠습니다.

제가 쓰는 검산 지시문 원문은 makefield.ai에 그대로 공개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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